안녕하세요.
1월 초 새해 인사를 드리며 늦지 않게 새로운 글로 찾아갈 것을 약속했건만 2월이 끝나가는 시점에서야 글을 보냅니다.
1월에 여러 일이 있었습니다. 한 해에 한 번 있기도 힘든 장례식을 한 달에 두 번이나 다녀오니 글을 쓸 수 없었습니다. 장례식장의 분위기는 언제나 익숙해지지 않습니다. 그곳에서 오랜만에 만난 사람과 반갑게 대화를 나눌 때도 마음 깊은 곳에서 큰 돌덩어리가 짓누르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장례식장은 영원히 적응할 수 없는 공간일지 모릅니다.
죽음은 인생의 방향에 대해서 깊이 생각할 기회를 줍니다. 끝없이 방황하던 제 인생의 방향키를 단단히 붙잡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일할 기회도 알아보고 미래에 대해 고민도 많이 했습니다. 당장 뭐라도 해야겠다는 조급함이 앞섰지만 그러면서도 전보다 더 여유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어딜지 모르겠지만 어딘가로 향하고 있는 듯한 느낌 때문이었을 겁니다.
새해 인사를 보낼 때 제 원래 계획은 2월 중으로 새로운 기획으로 연재를 재개하는 것이었습니다. 기획은 구상하였지만, 연재를 이어갈 용기가 좀처럼 나지 않았습니다. 오랜 기간 매주 글을 썼기 때문에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믿었지만, 현실은 달랐습니다. 배움은 더디지만, 망각은 빠릅니다. 몇 년간 글을 쓰며 다진 습관이 사라지는 데 몇 주 걸리지 않았습니다. 두 달 넘게 제대로 된 글을 한 편도 쓰지 않은 제가 전처럼 연재를 이어갈 수 있을지 고민했습니다.
우연한 기회로 글과 관련된 일을 배울 기회가 생겼습니다. 그곳에 지원하면서 콰드로페니아 이야기를 했습니다. 여기서 매주 글을 썼기 때문에 많은 글을 쓰는 것은 자신 있다고 적었습니다. 제가 가진 경험은 거의 없었고 내세울 것은 이곳뿐이었습니다. 제가 해온 일이 없기도 하지만, 그만큼 콰드로페니아가 제 인생에서 가지는 의미가 매우 크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콰드로페니아는 제 20대 중반을 오롯이 쏟은 추억이고 정성이고 사랑입니다. 그래서 연재를 쉬는 동안에도 콰드로페니아를 어떻게 해야 할지 늘 고민하고 생각했습니다.
다음 주부터 정상적으로 연재를 재개할 예정입니다. 앞으로 여러분께 보내는 글은 이전과 많이 다를 것 같습니다. 작년에 혼자서 연재를 이어가며 어려운 점이 정말 많았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힘든 점은 매주 3,000자에 가까운 글을 혼자서 쓰고 퇴고하는 일이었습니다. 한계에 부딪혔기에 10월에는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서 다양한 글로 연재를 이어갔습니다. 새로운 방식을 도입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당분간 콰드로페니아는 영화, 책, 음악을 소개하는 글에 주력합니다. 국회도서관의 소식지를 좋아합니다. 국회도서관은 '금주의 서평'이라는 제목으로 매주 새로운 책을 소개합니다. 단순히 짧은 소개 글이 담긴 글이 아닙니다. 각 계의 교수가 쓴 서평이 실립니다. 인터넷 서점에 올라오는 홍보에 비해 무미건조하고 딱딱하기 그지없습니다. 하지만 '금주의 서평'에서 정말 다양한 책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소설과 에세이에 비해 신간 소식을 알기 힘든 인문학, 과학 서적을 주로 다루고 있어서 좋았습니다.
많은 정보를 접할 수 있는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에게 닿지 못하는 정보가 있습니다. 정보가 홍수처럼 쏟아진다해도 우리의 능력과 시간은 제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고도의 발달한 기술은 우리가 좋아할 법한 정보만 보여줄 뿐입니다. 홍대의 '라이브 클럽 데이'가 8주년을 맞이 했다는 이야기. 장만옥이 출연한 '이마 베프'가 25일 토요일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상영한다는 이야기. 서점에 가면 새로 나온 책이 눈에 보이지만 인터넷 서점에서는 검색창으로 다 찾아볼 수 있음에도 신간이 무엇인지 찾기 힘듭니다. 그래서 아직 제가 좋아하는 것을 소개하는 일이 의미 있다고 느꼈습니다.
거창한 기획에 비해 준비는 미진합니다. 어떤 메일링 서비스를 이용할지, 디자인은 어떻게 할지 솔직히 말씀드리면 아직 미정입니다. 심지어 앞으로 바쁜 일정 속에서 매주 연재를 제대로 이어갈 수 있을지 역시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런 부분 일일이 고려하면 아마 영영 글을 쓰지 못할지 모릅니다. 되는 대로, 할 수 있는 대로 뭐라도 해보면 어찌저찌 되지 않을까 합니다. 일단 저지르고 하나하나 맞춰간다. 그게 제 2023년 목표입니다.
에세이 위주의 글은 친구들이 돌아오기 전까지 정기적인 연재가 어렵기에 블로그를 통해 비정기적으로나마 이어가고자 합니다. 현실적으로 친구들이 다시 콰드로페니아에 돌아오기는 힘들 겁니다. 언젠가는 다시 모일 날이 올 거라고 작은 소원을 담아 봅니다. 그래도 가끔 콰드로페니아를 통해서 전과 같은 글도 보내려고 노력해보겠습니다.
다음 주에... 새로운 글로 찾아갈 수 있겠죠??
다음 주 금요일, 여러분 메일함에 제 글이 있기를... 저도 그러기를 무척 바랍니다.... 제발... ^^;;;
좋은 주말 되세요.
김호준 올림.
p.s.
오늘의 노래는 Take That의 'Back for Good'입니다. 팝을 좋아하던 중학생 때 많이 들었던 노래인데 스포티파이를 통해 오랜만에 다시 들으니 무척 반가웠습니다. 90년대 노래는 가요와 팝을 가리지 않고 특유의 포근함이 있어요. 아마 락이나 포크를 기반으로 해서 그럴까요? 어쨌든 들을 때마다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추운 겨울을 지나 서서히 봄이 오는 것 같습니다.
마음이 따뜻해진다니 생각난 이야기가 있습니다. 지난 1월에 글을 보내고 한 달이 지나서 계정을 열어보니 제 새해 인사에 답장을 남겨주신 구독자가 있었습니다. 이런 글을 보며 콰드로페니아를 오래 이어가야겠다고 다짐합니다. 이 글을 빌려 감사 인사를 전합니다. 따스한 인사 정말 감사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