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를 시작한 지도 어느덧 9년 정도 되었다. 마라톤을 뛴 적이 있지 않을까 생각할 수 있지만 그 정도의 실력에 미치지 못했다. 9년 동안 꾸준히 하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10K는 고작 5~6번밖에 뛰지 못했다. 대개 5K의 거리만 매일 같이 뛰는 데일리 러너에 가깝다. 지난 시간이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마라톤을 뛸 정도의 실력은 아니지만 웬만한 거리를 뛰어도 지치는 기색이 없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자신있게 내 취미이자 특기가 달리기라고 말할 수 있다.
나는 운동전도사다. 하는 운동은 고작 달리기에 가끔 하는 맨몸 강화 운동이 전부지만 운동이 만병통치약이라고 믿는다. 무기력함을 느끼는 친구, 잔병치레로 고생하는 친구에게 꼭 운동을 권한다. 무엇이 제일 좋은지 되물으면 걷고 달리는 일이 첫걸음으로 좋다고 말한다.
걷기, 달리기가 첫 운동으로 제일 좋은 이유는 쉽다는 점이다. 운동을 위해 특별히 필요한 것이 없다. 집에서 편하게 신는 운동화 한 켤레와 편안한 옷 한 벌이면 충분하다. 비싼 운동화도, 화려한 옷도 필요없다. 옷차림이 준비됐다면 나가서 시작하면 된다. 이보다 쉬울 수 없다. 전문적인 기술도 필요없다. 그저 몸이 가는 대로 움직이고, 너무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끝내면 된다.
고2 때였다. 토론 동아리 활동을 시작한 이후 대회 준비로 인해 밤을 새우는 일이 많았다. 대회 준비는 할당량이 없었다. 어디까지 준비해야 할지 알 수 없어서 되는 데까지 하다 보면 밤늦게까지 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동아리만 하며 사는 사람이 아니었다. 학교 일정에, 때때로 시험 공부까지 있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등교해서 시험 공부로 저녁을 지새우다 토론 대회 준비 더해지면 피로는 이만저만이 아녔다.
달리기는 일상의 갑갑함도 달래고 부족한 체력도 보충할 겸 시작했다. 달리기 말고도 할 수 있는 운동은 많았다. 친구들과 축구, 농구를 할 수도 있었고 가까운 체육센터에서 수영을 배울 수도 있었다. 하지만 달리기만큼 쉬운 운동은 없었다. 배울 필요도 없었고 구태여 누굴 부를 필요도 없었다. 운동복을 입고 아이팟을 챙긴 후 혼자 나가서 뛰면 그만이었다. 그렇게 집 근처 공원까지 오가며 시작한 달리기는 시간이 흘러 지금까지 이르게 되었다.
달리기가 지닌 의외의 장점은 심적 안정이었다. 발을 뻗어 달리기 시작할 때는 정말 힘들다. 헐떡거리며 도대체 이걸 왜 하고 있는지 후회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건 아주 잠깐의 일이다. 10분을 지나면 왜 뛰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저 한 걸음 한 걸음 버티면서 뛸 뿐이다. 조금씩 뜀걸음 소리와 내 숨소리에, 간간히 새소리가 섞여 들어온다. 이 시점부터 마음이 차분해진다. 그 이후로는 힘들기보다 오히려 기분이 좋아진다. 마음속 고민도 잠깐 사라진다. 그렇게 달리기를 마치고 나면 개운하다. 달리기는 몸만 아니라 정신까지 건강하게 만들어준다.
10년 가까이 달리기를 좋아하게 만든 것은 건강해진 몸보다 심적 안정 효과였을지 모른다. 고민이 많거나 스트레스가 쌓인 날이면 멍하니 있다가 재빠르게 운동화를 신고 나가서 뛰었다. 집에서 하루 종일 축 늘어져 있는 내 모습이 한심하게 느껴지는 날에도 나가서 뛰었다. 달리기를 하며 한 번이라도 몸을 격렬하게 움직이고 나면 에너지를 얻었다. 오늘을 준비할, 내일을 버틸 힘을 기를 수 있었다.
몸이 아프면 고통은 몸에서 끝나지 않는다. 아픈 몸을 억지로 이끌고 하루를 보내려면 평소보다 더 많은 기력이 필요하다.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할 때 느끼는 강한 무기력은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반대도 가능하다. 무기력하고 아픈 마음으로 인해 몸까지 아프기도 한다. 우리의 몸과 마음은 이어져 있다.
운동은 아프지 않기 위해서도, 아픔을 이겨내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세상일은 호락호락하지 않고 기를 쓰고 버티다 보면 몸과 마음은 거덜나기 마련이다. 운동은 우리가 망가지지 않도록 견딜 힘을 길러주는 방법이다. 조금씩 강해지고 단단해지면서 자신을 지킬 수 있게 된다. 강해진 몸과 마음은 세상의 풍파에 덜 흔들린다. 흔들림이 잦아들면 아픔이 아물 수 있는 여유를 마련할 수 있다.
만일 자신이 힘든 시기에 놓였다면, 오늘 저녁은 운동화를 신고 뛰어 보자. 너무 무리해서 시작할 필요는 없다. 처음은 가벼운 산책으로 시작해서 조금씩 늘려가면 좋다. 운동은 내 몸을 지키기 위한 일이지만 너무 무리하면 도리어 몸을 해치기도 한다. 운동은 업무가 아니니까 잘하겠다는 부담을 내려놓고 천천히, 하나씩 나아가자.
P.S.
이 글의 제목은 언니네 이발관이 발표한 노래 '너의 몸을 흔들어 너의 마음을 움직여'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