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에서의 첫 날은 기막힌 하루였다. 그때는 코로나19가 한창 유행하기 시작했는데 특히 여러 명이 밀집해서 지내는 그곳의 특성상 방역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였다. 나는 약한 기침 증세가 있었는데 그 사실을 솔직히 말하자 나를 다른 곳으로 보냈다. 그곳은 코로나19에 걸렸을지 모를 유증상자를 격리하는 시설이었다. 나는 거기에서 1인 1실 격리를 해야 했다. 하얀 벽에 침대와 책상이 있었고 책상 위에는 훈련 교본이 있었다. 널찍한 방에 혼자서 훈련 교본만 붙들고 하루를 보내려니 막막했다. 그래도 모자를 푹 눌러쓰고 험악한 인상으로 훈련병을 맞이하는 조교를 마주치지 않았다는 데 만족했다.
문제는 밤이었다. 진주의 8월 말은 더웠다. 그러나 방은 통풍조차 제대로 되지 않았다. 게다가 에어컨은 없고 선풍기 한 대만이 천장의 중앙에서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그 선풍기만으로는 뜨거운 열기를 날리기에 택도 없었다. 낯선 공간, 후덥지근한 온도, 불편한 침대. 아무리 잠을 청하려 해도 잠은 오지 않았다. 나는 멍하니 하얀 천장만 쳐다보다가 새벽 두 시가 다 지나서야 잠에 들 수 있었다. 첫날의 기억은 앞으로의 군 생활이 그리 순탄치 않으리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예고편이었다.
몸과 마음을 혹독하게 괴롭히지만 밥과 잠은 잊지 않고 챙겨 주는 공간. 우리가 군대에 대해서 흔히 생각하는 이미지이다. 밥에 대해서는 얼추 맞는 말이지만 (적어도 굶을 일은 없으니까) 잠은 이야기가 좀 다르다. 이렇다 할 만한 자격증 하나 제대로 갖추지 못한 나는 헌병, 요즘 말로 하면 군사경찰이 되었다. 군사경찰이라는 이름이 그럴싸해보이지만 현실은 혹독했다. 주 7일, 밤낮 없는 근무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 낮까지 일을 하고 나서 다음 날 새벽에 일어나서 일을 또 해야 했다. 그 다음 날은 밤에 나가서 새벽에 퇴근한다. 운이 없으면 새벽에 퇴근하고 오전에 일어나 일을 해야 하는 날도 있었다. 새벽에 퇴근했다고 낮잠을 원없이 잘 수도 없었다. 오후에 해야 할 일, 소위 ‘사역’이라는 녀석이 생기면 자다 말고 일어나서 눈을 비비며 일을 해야 했다.
잠은 늘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휴일도 밤낮도 없는 삶에 몸은 서서히 피로에 찌들어 갔다. 설령 여유가 생겨 많이 자게 되어도 피로는 내 곁을 떠나지 않았다. 아무리 자도 자도 피곤했다. 자면서도 새벽에 일어나지 못할까 봐 긴장을 늦출 수 없어서 깊이 잠들지 못했다. 낮잠을 잘 때면 가위에 자주 눌렸고 평소에 하지 않던 잠꼬대까지 하기 시작했다. 소화도 잘 안 되고 가끔은 두통까지 느꼈다. 몸은 서서히 망가지고 있었다. 아마 만성피로에 가까운 상태였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절실한 것은 운동도 풍족한 식사도 아니었다. 그저 마음 편히 잘 수 있는 시간이 필요했다. 나는 어떻게든 살기 위해서 잠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규칙적인 수면 습관을 조금이라도 확보하기 위해서 억지로라도 11시에 잠에 들었다. 다음 날 새벽에 일어나야 하든 아침에 일어나든 오후에 일어나도 되는 날까지도 11시에 잤다. 8시간의 잠을 확보하기 위해서 늘 자는 시간을 계산하였다. 그보다 더 오래 자면 잠에 취해서 하루를 보내기 때문에 8시간이 채워지면 아침에 일어나서 책을 읽었다. 나를 보며 동료들은 잠이 부족한 이곳에서 어떻게 부지런하게 살 수 있냐며 신기하게 보았지만 나는 그저 살기 위해서 발버둥치고 있었을 뿐이었다.
내가 입대하고 몇 달 뒤 수경으로 만기 전역한 로꼬의 ‘잠이 들어야’가 나왔다. 로꼬의 음반은 누가 봐도 군 생활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었다. 휴가를 마치고 “집이 아닌 집”인 부대로 돌아가는 내용의 노래('귀가')도 있었고 면회하러 온 친구들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면회실’이라는 노래도 있었다. ‘잠이 들어야’는 새벽에 불침번 근무를 서며 몰래몰래 가사를 썼고 교통정리를 하며 멜로디를 생각했다고 한다.
제대로 잠을 잘 수 없던 내게 ‘잠이 들어야’는 마치 내 이야기 같았다. 듣자마자 음반의 모든 곡을 MP3로 다운받아서 매일 같이 들었다. 이 노래를 들으며 오지 않는 잠을 청했고 허구헌 날 ‘잠이 들어야~ 내일이 올 텐데~’라며 흥얼거렸다. 지루한 초소 근무를 설 때면 ‘하번을 해야 내일이 올 텐데 멈춰버린 시간 위에서 뒤척이기만’이라고 가사를 바꿔 부르며 선임과 껄껄 웃었다. 낯선 공간과 익숙지 않은 생활에 힘들었던 시기를 노래가 위로해주었다. 덕분에 그 시간이 조금은 견딜 만했다.
나의 잠을 억지로 깨울 일도 누군가 나를 붙들어 깨울 일도 없는 지금 이 노래를 들으면 잠이 부족해서 피곤에 찌들어 있던 그 시절이 생각난다. 그때의 나는 피로와 불안, 때로는 분노와 억울함 때문에 지쳐 있을 때가 많았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화를 내는 일이 잦았고 나와 맞지 않는 사람들을 속으로 미워한 적도 있었다. 그 힘든 시간 속에서 나를 지키며 무사히 전역까지 올 수 있던 데는 ‘잠이 들어야’의 도움이 컸다고 생각한다.
로꼬가 힘든 군 생활을 견디며 만든 노래가 나에게 다가와 어려운 시기를 버틸 수 있는 작은 힘이 되어주었다. 노래는 이렇게 사람과 사람을 잇고 삶을 조금 더 살 만하게 만들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