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석은 야구선수 이승엽을 통해 알게 되었다. 이승엽 선수는 한 인터뷰에서 가장 좋아하는 노래를 묻는 말에 김광석의 ‘일어나’를 제일 좋아한다고 답했다. 이승엽 선수가 출전하는 요미우리 자이언츠 경기를 하루도 빼놓지 않고 보던 나는 당연히 그 노래가 궁금해졌다.
자세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일어나’를 검색해보았던 것 같다. 기타와 하모니카로 시작한 그 노래는 잔잔했지만 큰 울림이 있었다. 왜 이승엽 선수가 이 노래를 좋아한다고 했는지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부진에 빠져 있는 시기에 이 노래를 들으면서 용기를 얻었으리라고 생각했다. 꼭 운동선수뿐만 아니라, 인생에 부침이 있는 시기에 굉장히 사람을 어루만져줄 수 있는 노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언젠가 힘들 때 이 노래를 들으면서 응원을 받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김광석을 알게 된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나고, 고등학교 3학년이 되었다. 솔직히 그다지 뛰어나지 않은 성적을 받아왔던 나는 그때까지도 명문대를 갈 수 있다는 망상에 빠졌다. 물론 정시로 가는 것을 생각한 것은 아니었고, 수시 전형 중 논술 전형을 생각했다. 논술을 6개월 정도 준비하고, 수능에서 최저 등급만 맞추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학기 초 담임선생님과 면담하면서 그런 착각은 박살 나고 말았고, 나는 다시 김광석을 찾았다.
“검은 밤에 가운데 서 있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아. 어디로 가야 하나 어디에 있을까 둘러봐도 소용없없지.”
‘일어나’의 첫 소절은 정확히 착각에서 깨어난 내 상황과 같았다. 내심 좋은 대학에 가기를 원하시는 부모님과 그런 대학에 갈 수 없는 나의 성적은 내 눈앞을 캄캄하게 했다. 하지만 길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인서울 중하위 대학에는 도전해볼 만한 수시전형들이 있었다. 면접과 적성시험 같은 것들이었다. 이것들을 남은 기간 최선을 다해서 준비해보겠다고 다짐했다. 의지가 약해질 때마다 ‘일어나’의 “일어나 일어나 다시 한번 해보는 거야”라는 가사를 곱씹으며 해낼 수 있다고 되뇌었다.
시간은 흘러 M 대학의 면접 날이 되었다. 나름대로 면접을 준비하고 갔다고 생각했는데 자기소개부터 절어버리고 말았다. 머릿속은 백지가 되었고 교수님의 진리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저 참된 이치라는 말만 할 수 있을 뿐이었다. 면접을 망친 나는 D 대학의 면접을 더욱 열심히 준비했다. D 대학의 면접은 특이하게도 국어 지문과 영어 지문을 읽고 질문에 알맞은 답을 찾는 방식이었다. 국어는 큰 문제가 안 되었지만, 영어는 언제나 문제였다. 그래서 나는 면접이 있기 90일 전부터 영문법 책을 정독했다. 그리고 M 대학의 면접을 망친 후부터는 더욱 열심히 했다. 물론 ‘일어나’와 함께였다.
M 대학의 면접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 D 대학의 면접이 진행됐다. 아버지의 차를 타고 학교에 도착해 면접장에 들어간 나는 입술이 바짝 마를 정도로 긴장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이름이 호명되었고, 곧 문제 푸는 곳으로 들어갔다. 책상 위에는 국어 지문 하나와 영어 지문 하나가 쓰인 문제지가 놓여있었다. 영어 문제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기 위해서 재빠르게 국어 문제를 풀었다. 그럼에도 영어 문제 한 문제 정도를 못 풀고 면접실로 들어갔다. 입이 건조해져서 말도 제대로 안 나왔지만, 풀이한 답들을 침착하게 말했다. 교수님은 잘했다는 말과 함께 나가도 좋다고 했고 나는 한숨을 돌리며 면접실 밖으로 나갔다.
“그저 왔다 갔다 시계추와 같이 매일매일 흔들리겠지”
“일어나 일어나 다시 한번 해보는 거야”
결과 발표가 있기 전까지 나는 계속 불안했다. 여기가 아니면 붙을 곳이 없다는 생각이 밀려들어 왔다. 그렇다고 재수 학원에 다닐 형편도 아니었고, 재수를 한다고 해도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다는 보장도 없었다. 너무나도 간절했던 나머지 어느 날 밤에는 믿지도 않는 하나님을 찾아서 제발 합격시켜달라고 기도했다. 그렇게 매일매일 흔들리던 10월 말, 학교 야자실에서 결과를 확인했다. 핸드폰 화면에는 붉은 글씨로 합격이라고 쓰여 있었다. 이윽고 친구들이 다가와 합격을 축하해준다는 명목으로 한두 대씩 때리고 갔다. 하지만 맞아도 웃음이 절로 나오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그간의 노력이 보상받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와 더불어 그 시간 동안 나를 응원해준 김광석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그제야 나는 김광석의 다른 노래들이 궁금해졌다. 그래서 김광석 4집 ‘김광석 네번째’에 있는 모든 노래를 들어보았다. ‘김광석 네번째’에 있는 노래 중 ‘바람이 불어오는 곳’,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서른 즈음에’가 특히 좋았다. ‘바람이 불어오는 곳’은 자유를,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은 사랑을, ‘서른 즈음에’는 어른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했다. 그러면서 김광석은 가수라기보다는 한 명의 시인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렇게 김광석의 팬이 된 나는 플레이리스트에 당시에는 들을 수 없던 1집을 제외한 김광석의 모든 노래를 실었다. 대학교에 다닐 때 한동안은 김광석의 노래만 들을 때도 있을 정도였다. 요 몇 년 새 내 플레이리스트에는 그의 노래는 사라지고 걸그룹들의 노래가 가득해지기 시작하면서 한동안 그의 노래를 잊고 살고 말았다. 그러다 올해 계획했던 일들이 최근에 하나둘씩 어긋나기 시작하면서 나는 염치없이 다시 그에게 응원과 위로를 받고 싶어졌다. 담담하지만 절절한 목소리로 나를 보듬어주는 그의 노래가 듣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