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겨울, 내가 고등학교 1학년 때의 일이다. 수업 진도가 다 나가고 나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자율학습 시간이 주어진다. 나는 전자사전을 가져와서 음악과 라디오를 들으며 시간을 보냈다. 그날은 옆자리 친구가 자기도 듣고 싶다고 하길래 이어폰 한쪽을 건네주었다. 여러 라디오 채널을 돌리다 EBS 라디오에서 멈췄다. DJ는 노래 한 곡을 소개하며 프로그램을 마무리하고 있었다. 무척 생소한 노래였지만 나와 친구는 아무 말 없이 노래가 끝날 때까지 감상했다.
그 노래는 윤종신의 ‘배웅’이었다. 당시 나에게 윤종신은 가수보다는 방송인에 가까웠다. 팥빙수 노래도 들어 본 적이 있었고, ‘교복을 벗고~’라고 시작하는 노래도 ‘다시 태어난 것 같아요’ 노래도 익히 알고 있었지만 찾아 듣는 정도는 아니었다. 내가 윤종신을 가수로 인식하고 오랜 팬이 된 계기가 바로 ‘배웅’이었다.
정말 좋은 노래였지만 아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배웅’이 담긴 음반은 윤종신이 전역하고 발표한 첫 음반이었다. 그 음반은 공백기 때문인지 가요계의 유행이 변해서인지 이전보다 저조한 흥행을 기록했다. 이후 발표한 음반도 음반 시장의 하락세와 맞물려 예상보다 부진한 성적을 거두었다. 아마 이것이 그가 방송 활동을 활발하게 하는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하지만 단순히 유명하지 않은 노래라기에는 이상한 점이 하나 있었다. 음원 사이트에서 ‘배웅’을 전혀 들을 수 없었다. MP3 다운로드도, 스트리밍도 모두 불가능했다. 음반은 거의 20년이 다 된 음반이었기에 진작에 절판되었다. 즉, 합법적인 경로로 ‘배웅’을 비롯한 음반 수록곡을 들을 방법이 없었다.
더욱 이상한 점은 라디오에서는 들을 수 있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라디오에서 들을 수 있다고 한들 거의 묻혀버린 노래였기에 선곡되는 일은 거의 없었다. 처음 그 곡을 들은 지 10년이 흐른 지금까지 라디오에서 ‘배웅’을 다시 들어본 적은 없었다. 그러니 그 작디작은 기회를 포착해서 테이프(?)로 녹음하는, 80년대에나 할 법한 시도 역시 할 수 없었다.
결국 나는 어쩔 수 없이 어둠의 경로를 찾아가야 했다. 그마저도 상황은 여의찮았다. 한참을 검색한 뒤에야 음원이 담긴 파일을 하나 찾을 수 있었는데 상태가 영 좋지 않았다. 몇몇 음원은 뚝뚝 끊기는 부분이 있었고 음질 역시 퍽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이보다 더 좋은 음원을 구할 방법이 당시 내게는 전혀 없었다. 울며 겨자 먹기로 들어야 했다. 그렇게 어딘가 망가진 음원으로 ‘배웅’을 감상할 수밖에 없었다.
구체적인 사연을 알게 된 것은 그로부터 2~3년이 지나서였다. 그 음반은 저작권과 판권에 얽힌 속사정이 있었다. ‘배웅’이 담긴 음반은 윤종신이 이전 소속사를 떠나서 새로운 레이블을 찾고 소속사를 만들고 낸 음반이었다. 그런데 소속사를 옮기는 과정에서 이전 소속사와의 계약 관계가 제대로 정리되지 않아서 문제가 발생했다. 결국 이전 소속사가 법원에 음반에 대한 판매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이전 소속사를 다른 사람이 인수하고 새로운 회사를 만들어서 앨범의 판권 문제가 붕 뜨게 되었다. 이런 복잡한 사정이 얽히면서 정식 경로로 구매할 방법이 사라졌다. 저작권은 레이블에 남아 있어서 라디오를 비롯한 방송에서는 틀 수 있지만 음원이나 음반을 구입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다행히도 윤종신이 월간 윤종신이나 라이브 무대를 통해서 가끔 그 음악을 들려주려고 노력한 덕분에 몇몇 곡은 접할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음원 사이트나 음반으로는 찾을 수 없는 음악이다. 나는 망가진 음원으로 열심히 듣다가 19년쯤 이곳저곳을 찾아 중고 음반을 구입하였고 음원을 추출하여 들었다. 12년 겨울에 처음 만난 음악을 7년이 지나서야 제대로 된 음원을 얻을 수 있었다. 7년이라는 시간 동안 유튜브가 왕성하게 성장하여 음원을 들을 방법이 생기긴 했지만 이 음원을 찾기 위해서 오랜 시간을 해맨 나에게 MP3 파일은 남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배웅'이라는 노래 한 곡에 참 많은 기억이 담겨 있다. 교실에서 라디오를 통해 우연히 이 노래를 들었을 때. 아무리 찾으려 해도 음원을 찾을 수 없던 때. 음원을 둘러싼 저작권과 판권의 복잡한 문제가 있음을 알게 되었을 때. 그리고 중고 음반을 구해서 음원을 추출하던 때까지. 노래도 참 좋지만 이런 이야기들이 하나하나 엮여 내 기억 속에 오래 남을 노래가 되었다.
나에게는 오랜 시간을 함께한 친구 같은 노래이건만 10년이 다 되도록 이 노래를 아는 사람을 단 한 명도 만나지 못했다. 쌀쌀한 바람이 불어오는 가을에 듣기 참 좋은 노래이다. 좋은 것은 함께 나눌 때 더욱 좋은 법이다. 내가 라디오를 통해 우연히 '배웅'을 만난 것처럼 이 곡이 여러분과 이 곡을 이어주는 하나의 계기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